2008년 01월 23일
[벨라스케스]마리 테레즈의 초상.(루이14세와 여인들)

디에고 벨라스케스/스페인의 마리아 테레즈
뤼브르에서 가장 사람이 많은 곳이라면 르네상스 화가들의 그림이 몰려있는 복도이다. 그곳에서 오른쪽으로 난 방을 들어서면 모나리자의 미소와도 만날 수 있다. 인파와 환의로 가득한 그 공간을 걸어가다 마지막 방에 도달한 나는 등 뒤를 두들기는 한기에 홀린 듯 몸을 돌렸다. 그곳엔 대형의 검은 화폭속에서 창백한 마리 테레즈 도트라슈가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마지막 방의 입구 오른쪽 벽에 걸려있는 그것은 진정 '새카만' 그림이다. 실제의 여자보다도 최소한 1.5배는 키가 커 보이는 그림이었지만 그녀의 실제 체구를 알고보면 얼마나 거대하게 확대 해 그렸는지 알 수 있다. 마치 그녀는 커다란 스커트 위에 지친듯 앉은 것 처럼 보였지만 그 커다란 스커트는 그림이 가진 음울함의 팽장을 한없이 돕는다. 그림의 검은 한기는 올려다보고있는 관객의 몸을 한없이 내리조으며 위엄을 발산하고있고, 화려한 회장안에서 나는 그녀와의 숨가픈 대면에서 한동안 도망칠 수조차 없다. 이 어두운 화풍은 고야에게까지도 이어지는 에스파냐의 특징적인 화풍이다. 퐁파두르 부인과 앙투아네뜨로 대변되는 프랑스의 초상화들을 기억해 본다면 같은시기임에도 대단한 차이를 보인다. 실제로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그린 펠라페 4세 왕가의 그림들은 대부분 음울하고 무겁지만 이 창백한 공녀의 그림만한 것이 과연 있을까.
저 거대한 공녀의 초상화는 그녀가 루이 14세에게 시집가기 전에 프랑스로 보내졌던 정략결혼용 초상화였다.'마리 테레즈 도트리슈'는 펠라페4세의 첫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루이14세는 마리 테레즈의 아버지였던 펠라페4세의 누이가 낳은 아들이었음으로 그들은 칙척관계다. 에스파냐 왕가는 몇대에 거친 친족혼으로 기형과 신경증이 난무했던 집안이었다(이 부분은 다음에 벨라스케스의 두번째 포스팅에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에스파냐 왕가의 여식들은 성에 갇혀 겸손과 도덕, 우아함과 예의만을 배우며 자란다. 그녀역시 그랬고 또한 누구보다 순진한 여인이었다. 그녀는 키가 작았다고 알려져 있는데, 사실 거의 병적인 수준이라 난쟁이에 가까웠으며 단것을 좋아해 초컬릿을 매우 즐겼다. 그녀는 늘 초컬릿을 뜨겁게 녹여 마시는 일을 깨어있는 거의 모든시간 반복했고 그로해서 그녀의 이빨은 모두 썪어버려서 하나도 남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프랑스에서는 기본적으로 외국의 왕가를 아주 촌스럽다며 얏잡아보는 기질이 있는데, 그녀는 이에 아주 적합한 재물이었다. 심지어는 마리 앙트와네트도 처음 시집갔을때 시녀들의 비웃음을 사고는 했다고 전해진다.(프랑스에서는 높은 귀족계급의 여성만이 왕비의시녀역을 수행 할 수 있었다.) 그런 와중에 이 작고 미인이 아닌 공녀는 그저 왕만을 바라보며 기품을 지켰다. 그녀와 왕은 동갑내기였다.

루이 14세에게는 많은 여자들이 스쳐갔지만 이중 공식적으로 정부로 인정받았던 여인들은 크레 3명 정도로 줄여지는데(중간에 퐁타주 공작부인까지 4명으로 보는 경우도 있지만 왕과의 사이에서에서 자식이 있는 여인으로 추려 3명이다. 퐁타주 공작부인은 아이를 가졌지만 조산에 사산되었다.) 처음으로 '루이즈 드 라 발리에르' 가 있었다.(무슨 사역마였나... 거기 나오는 여자주인공의 동명인데 실제로 작가가 그녀를 모델로 썼다고 밝혔던 바 있음. 이때 번역이 잘못되었는지 ;;; 그녀가 왕비였다고 알고있는 아니메들이 있는듯도 하다.)
발리에르 부인은 는 왕비의 시녀였다. 매력적이었던 그녀에게 왕이 반했고 그녀역시 왕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마리 테레즈 왕비는 그녀를 대단히 경멸했으나 발리에르부인은 자신을 죽으면 지옥에 갈 것이라고 말하고 다닐 정도로 왕비에게 가책을 가지고 있었다. 정부였음에도 발리에르는 왕에게 교태를 떨거나 하지 않았고 정숙하고 예의발랐으며 매우 청경한 여자였다.
두번째는 악명높은 몽테스팡부인, '아테나이 드 몽테스팡'이 있다. 마찬가지로 왕비의 시녀였던 그녀는 전설적인 악녀로 알려져 있는데, 왕과의 연분이 나기전에 발리에르부인의 이야기를 듣고는 왕비에게 "그럴수가! 나같으면 부끄러워서 자결했을꺼에요" 라고 호들갑을 떨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말을 잘 하고 대인관계가 좋기로 유명했던 몽테스팡은 사교계를 휘두르는 여자였고, 대단한 미인이었다고 한다. 입이 아주예쁘고 말을 할때 언제보다 예쁘게 움직였으며 웃을때 대단히 아름다웠다고 알려진 그녀는 대화를 하는중에 상대를 절대 지겹게 만드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공식 정부가 된 이후에 왕과 자주 싸웠고 또 시끄러웠다. 그럼에도 왕은 그녀를 버리지 못하고 사랑했다. 그녀의 매력은 그럴만큼 컸다.
몽테스팡부인이 왕과 처음 관계를 가지기 시작했을때 이미 공식정부의 자리에는 발리에르가 있었다. 그녀는 왕으로 하여금 발리에르 부인을 같은 건물에 살게 만들게 해 달라고 했고, 왕은 몽테스팡 부인과의 관계를 숨기기 위해 그렇게 행했다. 왕은 발리에르부인의 방을 지나 몽테스팡부인의 처소로 갔고, 그들은 늘 발리에르의 방 바로 옆방에서 정사를 치뤘다. 참다못한 발리에르가 사랑하는 왕을 버리고 수녀원으로 들어갔다.
18세기 여성복식에는 '볼랑' 이라고 불리는 로브(여성의 외출용 의상)가 유행했던 시기가 있었는데, 로브 볼랑은 와토주름을 잔뜩 잡아서 치마를 한없이 부풀리는 양식이다. 이것은 몽테스팡 부인이 왕의 아이를 가졌을때 임신사실을 숨기기위해 입었던 드레스에서 유래했다.
몽테스팡이 몰락하게 된 계기는 프랑스 귀족사회에 독약에 대한 구설이 시끄러워지면서부터였다. 언제부터인가 갑작스럽게 죽는 귀족이 늘어나고 큰 돈을 물려받은 귀부인들이 샬롱과 사교계에서 이름을 떨치는 일이 많아졌는데 이에의한 조사가 이루어지기시작했다. 사제들의 입에서 "최근들어 독약으로 사람을 죽이려 했다는 고해성사가 많아졌다" 라는 말이 나오자 그로해서 유명한 마녀가 잡혀화영당하는 일이 있었다. 이 마녀는 몽테스팡부인과 매우 가까웠는데, 왕이 퐁타주부인에게 한눈을 팔때 나신으로 누워 미숙아의 피를 받아 온몸을 샤워하는 의식을 거행하고 그녀를 독살하기 위한 독약을 구입했다는 등의 증언이 이 마녀의 딸로부터 나오자 일은 거대해졌다. 그녀는 자신이 밀어냈던 발리에르부인과 같이 수녀원으로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맹트농부인이 있다.
몽테스팡부인이 루이의 첫 아이를 낳은 다음 아이를 숨기기 위해서 유모를 고용했다. 그녀가 맹트농부인이다. 맹트농은 아주 평범하고 의상센스도 좋지못했다. 게다가 도덕의식이 높고 매우 강직한 여자였음으로 여성편력이 시끄러운 루이14세가 한눈을 팔 만하지 못한 여인이었다. 몽테스팡은 일부러 이런여자를 골라 들였던 것이다. 루이14세토한 그녀를 탐탁찮아했다.
그러나 화려한 여인들에 질린 루이의 눈에 그녀가 들었다. (물론 몽테스팡같은 여자와 몇년 살다보니 학을 띌 만도 하지) 그녀가 왕을 받아들인것을 모두 놀라워했고 맹트농부인은 왕이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을 기적이라고 말 했다.
마리아 테레즈 왕비가 죽고, 루이14세와 맹틔농부인은 비밀 결혼식을 올렸으나, 그녀는 공식적인 왕비가 되지는 못했고, 14세가 죽기전에 그녀는 성을 빠져나왔다.

이것은 프랑스에서 그려진 마리 테레즈왕비의 초상화.
마리 테레즈왕비의 순진함은 다행히도 그런 그녀를 보호했다. 그녀는 누군가 눈앞에서 지신을 비웃어도 알아차리지 못 할 정도로 순진했다. 그저 멍청할 정도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왕에게 충직할 뿐이었다. 공공연히 불륜연애가 난무했던 당시 유럽왕가, 심지어 베르사이유안에서도 그녀는 묵묵히 왕비로서의 책임을 다했을 뿐이었고 그로해서 이 왕비의 이름은 나름대로 성안에서 힘을 가지게 되었으며, 그녀가 죽기 전까지 최소한 궁 안에서 프랑스 왕가는 의식적으로나마 품위를 지켰다고 전해진다. 물론 이에는 루이14세의 행동도 힘으로 작용했는데, 그는 그녀를 여자로서 사랑하거나 매력을 느끼지는 못했으나 왕비로서 존경하고 일주일에 2번씩 그녀와 잠자리를 함께하는 놀랄만한 예를 보여줬다. 이로해서 그녀는 크게 왕의 오입질에 노여워하거나 괴로워하지는 않았다.(참을 만 했다는 말이 어울리려나) 왕비가 정숙했고 왕이 그녀를 존중한만큼 국민들은 그녀를 존경했다. 그러나 이 순진한 여인도 왕의 애첩들을 대할때는 매우 분노하며 경멸했다고한다.
펠라페4세의 딸이었던 그녀도 동생이었던 유명한 마가리타도, 왕가의 상황에 비해 인생이 그리 비극적인 것 만은 아니었다.(물론 같은시기의 다른 왕족의 여인들에 비교했을때에도.) 그것은 그녀들이 교육받았던, 혹은 가지고있었던 겸손함과 도덕성 덕분이었다. 그녀가 바보같은 정도로 순진했던것이 내게는 축복으로 보인다. 조금 난처하지만 한국에는 '모르는게 약'이라는 말이 있지않은가.
이후에 루이14세는 그녀와의 결혼와 자신의 어머니의 핏줄을 이유로해서 에스파냐의 왕가에 자신의 아들을 앉히기 위해 전쟁을 치룬다. 그로해서 프랑스의 루브룽왕가가 지금까지도 스페인의 왕실의 자리에 앉아있는 것이다.
# by | 2008/01/23 14:01 | └ 그림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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