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지색

모니터로해서 '모던걸'에 대한 1937년산 글귀를 읽던 나는 눈가로 흠칫흠칫 움직이는 장미같이 빨간 물체를 보았다.
창문을 가린 틔뿌연 발 뒤에 보일듯 말 듯 움직이고 있는 그것은 더러운 베이지색 벽에서 흠칫 튀어나와 그 생동감있는 색감의 몸뚱이를 매력적으로 흔들어댔다. 문득 이 공간에 베이지색이 너무 많다고 생각했다. 내가 앉은 이 건물의 내부도 베이지색 벽이고 창밖을 둘러싼 3개의 눈에띄는 건물벽도 모조리 베이지색이며 산등성까지 들어선 집들의 대부분이 베이지색의 벽을 가지고 있다. 창을 가리고있는 천으로 만든 발도 베이지색이며 심지어 내가 아까부터 글귀를 적어대는 수첩의 내장지도 베이지색이다. 의도돼어있는. 끔찍하기 그지없는 평정이다.
그 베이지색 수첩에 방금까지 적었던 글귀를 조근조근 읽어내리다보니 내가 왜 모던걸까지 갔는지가 보인다.
샤넬
아르데코
타마라 드 렘피카  
백합
베이지색의 종이쭉지에 적힌 단어들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다시 베이지색 발에 시선을 돌리자 붉은 형체는 다시 몸을 들어낸다. 그것은 어찌보면 고야의 대형 귀부인의 머리에 꽃힌 핑크색 리본같기도 하고 백합의 에로틱한 잎속에 작게 머리를 내민 성기같기도 하다. 아름다운 포인트는 사랑스럽다. 그러나 모든 포인트가 아름답기만한것도 아니다. 그럼으로 아름다운 포인트가 진정 아름다운것이다. 부산대앞의 어느까페가 생각났다. 그림을 그린다는 사람이 운영하는 그곳은 벽에 그가 그린 어설픈 그림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그로해서 그는 왜 그가 그림으로 먹고살지 못 하고 마실것을 팔아야만 하는지 그림을 대외에 공개함으로해서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그러한 무지막지함이 주는 해학이 마음에 들어 자주가던 그곳에 한번은 내가 앉은 의자의 머리위에 작은 풍경화가 걸려 있었던 적이 있다. 초록색의 숲과 그 앞에 흐르는 하늘색의 물이 프르고있는 풍경화는 을씨년스러울정도로 정도를 지키면서도 충격적으로 센스가 없었다. 그 안에 오른쪽 하단 황금비율의 자리에 의도한것이 분명하게 그려져있던 붉은색. (보트였는지 집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것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창밖의 붉은 움직임은 그와 달랐다. 그것은 당혹스러우면서도 자연스러웠다. 창을 기준으로 본다면 왼쪽 창의 오른쪽 하단으로 황금비에 부합하는 위치였지만 아주 적절한 느낌이었다. 낡은 베이지색의 벽은 아름답지 않았고 붉은색은 황당할 정도로 튀었지만 기묘하게 잘 어울린다. 그래, 어쩌면 렘피카가 그린 자화상의 힘넘치는 차체와 도도한 얼굴속의 새빨간 입술같이 색정적이다. 초록과 흙색으로 뒤덮힌 아담의 동산에 찬란하게 빝나는 이브의 사과같다. 대관절 무엇이 저토록 아름다운겐가.
나는 천발을 손으로 끌어올렸다. 발을 끌어올리는 끈이 있었지만 그것은 시끄러워 내 감정을 해칠것만 같았다. 몇일간 죽은것만 같았던 머리가 살아나고 이상하게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천천히, 내 손과 발의 아래로 신성한 붉은색의 정체가 창밖으로 들어났다.
그것은 작은 창을 열고 그것을 닦아내는 청소부의 붉은 고무장갑이었다.

by 이따이카키 | 2007/12/13 11:45 | 내부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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